진료실 잡담 독감백신 맞추느니 차라리 그냥 걸리는게 낫다? 2009/11/21 22:37 by latro

   


Q.

두돌된 아기를 데리고 잔병치레를 자주 하는 중에 여기를 알게 되어 글 잘 읽고 많은 도움을 얻고 있습니다.

신종플루와 관련하여 어떤 한의사분이 쓰는 블로그에 면역에 대한 이야기와 독감예방접종을 하느니 차라리 앓고 지나가라는 이야기, 신종플루 예방접종을 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많은 아기엄마들이 여기서 글을 읽고(이곳저곳에 내용이 퍼져서요) 예방접종을 무턱대고 하지 않겠다고 주장하던데.. 고민도 되고 어려워서 도움을 청합니다. 이게 도대체.. 맞는 내용이기는 한 건지요? 

xxxxxxxxxxxxxxxx -> 그 한의사분의 블로그인데요..

(블로그 주소는 latro가 임의로 가렸습니다.)



A.

예방접종의 목적
말씀하신 블로그 내용들을 잘 보았습니다.

예방접종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특정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 - 그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건강하고 편안하게 지내기 위한 것이지요. 어떤 질병에 대한 예방접종도 직접 그 질병에 걸렸을 때 만큼 면역능력이 잘 생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어떤 질병에 대한 면역능력 - 단지 그게 아니잖아요. 같이 생각해 볼까요.


예방접종이 필요한 질병들의 특징
예방접종은 기본적으로 미생물에 의한 감염성 질환에 대해서만 존재합니다. 하지만 모든 감염성 질환에 대해서 예방접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사는 없습니다. 가능하지도 않구요. 대표적으로 '감기'의 경우는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 종류도 다양하고 그 중 가장 흔한 원인이 되는 라이노바이러스(Rhinovirus)의 종류만 200여 가지가 넘기 때문에 백신이나 치료제를 만드는 것이 몹시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증상이 심하지도 않고 3~4일 만에 좋아지기 때문에 백신 개발 같은 것은 너무나도 비효율적이고 사치스러운 일인 거지요. 이거야 말로 그냥 걸리는 게 예방접종보다 나은 거지요.

예방접종을 위해 개발되었거나 개발중인 백신들은 몇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1. 그 질병에 걸렸을 경우 사망 등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2. 질병의 전염력이 강하다.
3. 질병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대책이 예방접종이다.

첫째, 그 질병에 걸렸을 때 사망이나 심각한 후유증이 발생활 확률이 높습니다. 한국에서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소아마비(폴리오 바이러스)는 예방접종 시행 이전에는 사망률이 5~7% 였으며 사망하지 않는 경우에도 불구가 되는 비율이 매우 높은 질환이었습니다. 예전에는 홍역을 '당연히 앓고 지나가는 일' 정도로 여겼지만, 홍역 감염자 1000명 중 1명은 뇌염이 발생하며 뇌염 발생환자의 절반은 사망하고 살아남더라도 대부분 심각한 후유증을 보입니다. 아이들 1000명중 1명이면 한 동네에 한 명 혹은 두 명입니다. 뇌수막염 백신으로 널리 알려진 헤모필루스 인플루엔자 b균(Haemophillus Influenza b)이나 폐구균은 2세 이전 소아에서 심각한 뇌수막염이나 패혈증의 주요 원인균이었습니다. 예전에 시골에서 아기때 열병앓고 귀머거리가 된 사람들, 대부분 이 균들에 의한 감염입니다. B형 바이러스 간염의 경우, 감염자인 엄마로부터 출생시 아기에게 감염된 경우 90% 정도가 만성 보균자가 되며 25% 정도가 간경변 또는 간암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다 커서 다른 경로를 통해 감염되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예후를 갖습니다.

둘째, 전염력이 강합니다.
즉, 한 사람이 감염되었을 때 추가 감염자 발생비율이 높습니다. 홍역이나 수두는 노출되면 거의 100% 걸리게 됩니다. 앞서 언급한 소아마비의 경우는 반대입니다. 감염자의 90~95%에서 증상이 없습니다. 그래서 안전하다는게 아니라 증상없는 사람들이 옮기고 다닐 확률이 더 높은 겁니다. 이런 질환들의 경우는 예방접종이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이루어질 수록 서로가 서로에게 옮길 확률이 줄어들기 때문에 예방접종을 하지 않은 사람들도 예방접종을 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게 됩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개인적 신념으로 예방접종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남들에게 하지 말자고 부추기는 사람들은 '집단면역'에 무임승차를 권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일단 그 질병에 걸렸을 때 특별한 치료가 없거나, 치료가 있더라도 많은 비용과 시간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방접종이 가장 효율적인 치료 및 예방법인 질병들입니다. 안전성으로 보나, 경제적인 면에서나 효과로 보나 모두 그렇습니다. 수두, 홍역, 볼거리, 인플루엔자(독감) 등 모든 바이러스성 질환은 특별한 치료가 없습니다.(타미플루는 치료제가 아니라 증상완화제라고 보는 게 옳습니다.) 불편한 증상을 조절해 주는 대증요법과 탈수를 교정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결핵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아에서 BCG 를 맞는 것은 결핵자체를 예방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결핵성 뇌염/뇌수막염이나 온몸에 결핵이 퍼지는 파종성 결핵 등 심각한 결핵감염을 막으려는 것일 뿐입니다. 일반적으로 결핵 감염시 6개월간 약을 복용하지만 저런 심각한 결핵감염의 경우는 최소한 12개월간 약을 복용해야 하며 그것도 잘 듣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예방접종으로 예방하고자 하는 것은 그 질병 자체는 물론이고 그 질병으로 인한 후유증, 사망 또는 사회경제적인 문제들입니다. 건강한 개인들은 건강한 사회의 기본 요소 중 하나이니까요.




예방접종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
그 블로그에 보니, '예방접종으로 질병을 막고자 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 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어른의 손바닥이면 아이 머리 하나 정도는 젖지 않게 해 줄 수도 있습니다. 어른의 손바닥이면 눈부심 정도는 피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예방접종이라는 손바닥의 목적은 하늘을 가리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햇볕이나 빗방울이 닿지 않게 하려는 데에 있는 겁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지요.


예방접종의 한계 vs. 질병의 위험
예방접종의 부작용과 위험성을 강조하거나 '효과없음'을 주장하는 내용도 있습니다. 맞습니다. 백신도 약물인 이상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있습니다. 모든 약물은 일정 확률로 부작용이 생깁니다. 한약이나 생약이라서 부작용이 없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거짓말 중에 거짓말입니다. 맹물도 부작용이 있는걸요. 사용하는 정도와 통계적 확률의 문제일 뿐입니다.

효과의 경우도 예방접종 후 40~60% 정도에서 면역능력이 생기면 '효과가 있다' 고 판단을 하니, 아예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결국은 확률과 통계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를 아주 '자연적'인 상태로 두고 '자연적' 인 질병에 걸려서 '자연적'인 후유증과 합병증이 생길 확률 또는 '자연적'인 면역이 생길 확률에 기댈 것인가 - 아니면 그 '자연적'인 위험을 조금 줄여보겠다고 개발한 예방접종의 면역능력 또는 부작용이 생길 확률에 기댈 것인가 - 하는 문제인 거지요. 그래서, 예방접종은 권장, 홍보, 교육 등을 할 지언정 강제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다른 예를 볼까요. 아이들에게는 다양한 경험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책은 뭐하러 읽나요? 바로 세상으로 내던지는 게 더 좋을텐데요.  직접 겪는 것만큼 값진 것이 없지요. 그렇다고 모든 것을 겪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책을 읽히는 겁니다. 독서를 통한 간접경험은 직접경험만 못하니 읽히지 마라 - 오히려 잘못된 선입견만 생길 수 있다 - 뭐 이런 이야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자는 새끼들을 벼랑에서 떨어뜨린 뒤 기어 올라오는 녀석만 키운다더라 - 뭐 이런 이야기, 사람도 그렇게 키우는 게 '멋있어' 보일까요? 예방접종은 그 질병에 직접 걸리지 않고 질병에 대한 면역능력을 만드는, 우리 몸에게 간접경험을 시키는 일과 같습니다.

예방접종은 많은 한계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의사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대안이 '그러니 하지 말자' 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예방접종은, 예방접종의 한계와 문제점이 아이들이 '자연질병'에 그대로 노출되었을 때 생기는 위험과 문제점보다는 적다는 통계적 사실에 의해 개발, 유지,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약이나 새로운 백신이 개발되었을 때 의사들의 주 관심사는 효과 보다는 부작용또는 위험성입니다. 모든 치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는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100% 안전성을 기준으로 비판하는 사람이라면 의사나 한의사보다는 종교인으로 분류해야 할 것입니다.


엄마 아빠들도 공부하셔야 합니다.
영화 '네트'에 보면 "정보는 넘치지만 진실을 찾기는 더욱 어려워진 세상" 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딱,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입니다.

'제보'(?) 처럼, 저와 다른 의견을 보이는 의사/한의사의 글을 알려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는 무척 감사하고 흥미로운 일입니다만, 당사자로서는 혼란때문에 알려주시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엄마 아빠들도 공부하셔야 합니다. 레퍼런스를 일일이 찾아보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논리적으로는 따져보셔야 합니다. 납득할 수 없는 것은 납득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례로 의학, 과학이 통계나 확률에 의존해서 생기는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스스로는 '아님, 말고' 식으로 이야기한다면 그건 모순 아닐까요?





핑백

  • A Pediatrician, Dr. Latro : 뭐 이젠 일상다반사니까... 2011-04-20 12:39:39 #

    ... 그냥 병에 걸리는 것보다 이론적으로나 통계적으로 조금 덜 위헙합니다. 차악입니다." 예방접종에 대한 간단한 개념은 예전의 글을 링크하겠습니다.독감백신 맞추느니 차라리 걸리는 게 낫다? ... more

덧글

  • 2011/11/24 18:5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latro 2011/11/24 22:12 #

    사실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한 아이들의 부모 입장으로 생각해보면 이해못할 일은 아닙니다. 확률과 통계란 참 무심한 것이니까요. 새로운 백신이 나올 때 저개발국가의 아이들에 대한 임상자료가 근거로 제시되는 것을 보면 이건 또 뭐하는 일인가 - 한숨이 나오기도 합니다.

    고민끝에 결론이 그 '차악second worst' 라는 생각인데 흥미롭게도 홍창의 소아과학 총론부분에 이런 내용이 있음을 최근에 알았답니다.

    "실제로 의사들이 당면하는 문제 중에는 선과 악 둘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경우보다는 두 가지 선 또는 두 가지 악 중에서 어떤 것을 택하는가 하는 문제인 경우가 많다." (16P)
  • 2011/11/26 04:27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1/11/26 04:4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latro 2011/11/29 00:21 #

    저도 "괜찮으면 약 안주셔도 되어요." 류의 엄마들이 참 반가와요. "항생제 안먹으면 안될까요." 와는 다른 어감이지요.

    저는 이 블로그를 육아와 소아건강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국지전(전면전의 반대로서)의 공간으로 생각합니다. 마냥 카리스마 있게 decision 해주는 의사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의사가 무엇을 고민하는지 알고 싶어하고 같이 고민하려는 사람들도 있을 꺼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인이나 육아까페에서 참여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 거긴 너무 전방위적으로 방어를 해야하더군요.

    소청과 의사들끼리 근본적인 주제에 대해 더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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